2003년 6월 11일이었다.
무려 32킬로그램짜리 체크인 백 두 개와 무게가 한참 초과된 기내용 수트케이스,
그리고 내 등짝 넓이 두 배쯤 되는 백팩을 짊어지고 시애틀 공항에 내린 게.
한국을 떠나던 인천공항에서는 가족들이랑 붙들고 한바탕 우느라
이미 진이 빠졌었는데, 무게가 초과된 짐을 풀었다 다시 싸고,
놓칠세라 게이트까지 전력질주해 겨우 비행기에 오르느라 혼을 쏙 뺐었지.
스무 살 넘어 먹도록 그 흔한 외국 여행 한 번 못 해보고서는
태어나고 자란 나라 한국을 떠나본 게 처음이었는데,
낯설기 그지없는 '미국사람'들이 내가 하는 영어를 알아들을 지도 걱정이고,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내가 알아들을 지도 걱정이고,
잔뜩 겁을 집어먹고선 공항에 내렸었는데.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음에도, 스무 살 무렵 적당한 나이에
부모님 곁을 떠나 스스로를 돌보고 혼자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내 뜻대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20대를 보낼 수 있었던 건 정말 행운이었다.
많은 이들을 만났고,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았고, 소중한 사람들이 남았구나.
다음 10년을 보내고 났을 때는 여유넘치고 능글맞은 사람이 돼 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