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에 퇴근해 동네 도서관엘 갔었다. 

2003년에 미국에 처음 와서 유핑네랑 같이 살면서 첫 날 만들었던 게 주 신분증, 은행계좌, 그리고 도서관 카드였다.

King county library system을 마르고 닳도록 써먹었었다-책이며 영화며 늘 그득그득 queue에 넣어두고 

주문해둔 게 도착했다는 노티스가 올 때마다 버스타고 부리나케 도서관에 가서 픽업해오고, 주말엔 거기가서 공부하고-


하지만 워싱턴 주를 떠난 뒤론 거의 학교 위주의 생활이라 

플로리다에서도 버지니아에서도 로컬 도서관 시스템은 그닥 활용하지 않았다. 

오레곤 온 뒤로 제일 먼저 찾아갔던 게 힐스보로 도서관이었고, 꽤나 맘에 들어 가끔 가곤한다. 

평일엔 저녁 여덟 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오래 앉아 일하거나 공부할 여건은 안 되지만, 

정시 퇴근 하는 날엔 일 마치고 오는 길에 들러서 논문 일 두어 시간 하고 돌아오기에 딱 좋다. 

이제까진 그저 가서 공부나 하고 가끔 책 두어 권, 영화 디비디 한 두 개 빌려오는 게 전부였는데,

오늘 처음으로 도서관 전체 섹션들을 돌아다니면서 뭐가 있나 구경을 했다. 


신간 섹션도 꽤 구색을 갖췄고, 레퍼런스용 자료들도 꽤나 많네- 이렇게 책장 별로 살피면서 

모퉁이를 돌아가는데 외국어 자료 섹션에 Korean 책장이 있는 게 아닌가! *_* 

후다닥 스캔해보니, 책장의 반 정도는 별 관심없는 자기계발서, 성공담 류의 책들이었지만

나머지 반은 읽고 싶었던 한국 소설들, 신경숙이며 황석영이며 박완서 등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_<

신이 나서 이상문학상 작품집 두 권과 엄마를 부탁해, 그리도 다른 책 서너 권을 죄다 빌려왔다.


책 한 바구니를 가득안고 줄을 서서 내 차례를 기다리면서, 이렇게까지 신이 난 스스로가 좀 서글펐다.

영어가 주 언어가 된 지 하루 이틀도 아닌데, 아직도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는 걸 보면,

내 영어가 내 한국어 수준을 따라잡기는, 아무래도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한국어로 된 엄청난 양의 텍스트를 와구와구 읽어치웠던 것처럼 그렇게 '탐독'을 

해 댈 시간이 있지도 않고, 약간의 여유가 난다해도 다른 일에 시간을 쪼개어 쓰기 바쁜 게 현실이니까.

아이쿠, 어쨌든 오늘도 한국어와 영어 사이에서 방황하는 건 별 다를 것도 없는 이야기고-


키스 쟈렛, 정경화, 니나 시몬의 시디들 그리고 한국 소설들로 책 바구니를 가득 채워와서 행복한 하루 :)

예쁘장하고 조용해서 좋아하던 동네 도서관이 더 좋아졌다.



Posted by CoolEngin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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