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에 집착하는 성격이라, 얼마나 지났는지 날짜를 세어보고, 기록해 둔 것들을 들춰보고, 돌아보고 곱씹는 일을 곧잘한다. 그렇다고 모든 게 처음이었던 대학교 1학년, 철부지 시절의 연애처럼 만난 지 며칠이 되었는지를 세어가며 기념하는 짓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하루, 또 하루 차곡차곡 쌓여가는 기억이 괜히 기분좋고 꿀단지 숨겨둔 거 마냥 든든한 기분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우리가 만난 지 며칠이 됐는지 정도는 세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 위젯을 깔아놓고 세었는데, 오늘로 꼭 1000일이 됐다. 사실, 첫 데이트는 조엘군 주장으론 처음 Dragon's tooth에 하이킹 갔던 날이래고, 뒤늦게 내가 기억해 보기로는 조엘군이 날 초대해 쉬림프 스캠피를 만들어줬던 그 날인 것 같고, 헷갈리고 어지럽던 공기를 정리하고 너랑 나랑 만나는 거다 작심했던 날은 또 다른 날이지만- 어쨌거나 우린 조엘이 친구 아닌 마음으로 처음 내게 손 내밀었던 그 날이 우리가 연인이 된 날이라 정했다.

한없이 마음이 흔들리고 또 흔들렸던 그 여름을 기억한다. 처음으로 가져본 독립된 내 공간이 있었고, 초여름밤의 은근한 공기와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블랙스버그의 분위기는 설레는 맘을 은근히 부추겼었다. 함께 빗소리를 듣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가로등이 뒤에서 비쳐 나뭇잎의 윤곽을 그려주는 발코니에 앉아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을 구경하면서 그가 걸어주는 LP를 듣는 호사-는 언제쯤 다시 누릴 수 있을까. 두근, 두근. 심장이 뛰었고. 빨라진 심장 박동수만큼 수다스러워진 나는 자꾸만 말을 이어갔는데, 그게 어색하지도 바보스럽지도 않았다.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는데 얼마나 걸렸는 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 그런 때가 있었다. 전화를 걸어도 괜찮을지 고민하고, 왜 연락이 오지 않는 걸까 답답해하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 배려하느라 가장 가까워야 할 그가 참 멀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랬던 날들을 다 지나온 우리가 참 다행스럽다.

작년 여름이었던가, 저녁에 조엘군 퇴근하고 집에 와서 같이 저녁 만들어 먹고, 설거지 하고, 빨래를 개다가 조엘이 새삼 불만이라는 듯이 그랬지- "Is this what life is going to be like for the next 30 years or so?" 하지만, 3000마일을 떨어져 그저 목소리 들려주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지금은 그렇게 평온하게 함께 누리는 일상이 참 그립고 절실하다

"I miss you, and I wish everyday that I were with you." 


Posted by CoolEngin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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