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졸업하고- 대학원 지원 다 해놓고 한국에 가서 돈을 벌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스플릿 쉬프트로 강의하면서 돈을 벌어서는
한 달에 얼마-라고 빠듯하게 용돈을 정해놓고 나머지는
혹시라도 꺼내쓸까 싶어 어머니께 통장 째로 맡겨놓고 열심히 모았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펀딩없이 시작한 대학원 첫 학기의
학비, 기숙사비, 생활비를 겨우 댈 수 있었다.
대학원 지원도 굉장히 늦었었고, 잘 아는 교수님이 있지도 않았고-
과 코디네이터인 닥터 N을 만나 조언을 구했는데,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단 코스웍에 올인하는 것.
한 학기 내내 코어 과목 셋에 죽어라 매달렸다.
읽고, 쓰고, 과제하고, 실험하고, 시험보고.
2007년 가을은, 그것밖에 기억나는 게 없다.
그렇게 4.0/4.0을 만들어놓고는,
Human Information Processing을 가르쳤던 교수님을 찾아갔다.
교수님, 저 사실 펀딩이 필요해요. 제 관심분야는 이런 거구요.
듣고 계시던 교수님이 말을 자르시더니만, 너 UPS Fellowship 공지메일 못받았느냐 물으신다.
받지 못했다 하니, 아- 그게 박사과정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펠로십이라 그렇노라고.
그러더니 다시 묻는다, 너 박사까지 할려고 온 거지?
네. 물론이죠.
그럼 direct Ph.D.로 바꾸면 어떨까?
그러고 싶지만, 그게 가능해요??
그런 경우를 몇 년 전인가 본 적이 있는 것도 같아서- 과에 한 번 알아볼테니까,
일단은 이 펠로십 지원서랑 프로포절부터 얼른 준비해.
추천서는 내가 써주면 되니까- 사흘 뒤가 due라 좀 빠듯하긴 하다.
그렇게 교수님이 프린트 해 준 application을 받아들고는 그 길로 기숙사방에 돌아와 틀어박혀서
사흘 밤낮을 자료찾고, 인터뷰 따고, 프로포절을 쓰고, 읽고, 고치고.
그렇게 밤을 꼬박 새우고 프루프리딩을 끝내고 나니, 크리스마스 이브더라.
지원서는 24일 오후 다섯 시가 마감. 다행히 마감 전에 봉투를 담당교수 방문 아래 밀어넣을 수 있었다.
1월이 돼서 교수님들이 내 지원 파일을 다시 오픈하고 리뷰하고 어쩌고 한 끝에 박사과정으로 옮기는 게 승인이 났고-
그러고는 열흘쯤 뒤였나...Congratulations로 시작하는 이메일이 왔다.
이제 학비랑 생활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는데, 그게 왜 그리 눈물이 났던지 모르겠다.
그 때 썼던 프로포절이- air traffic controller들 트레이닝의 문제점에 관한 거였다.
그 프로포절에 살을 붙여서 그대로 내 dissertation으로 만들 수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there's a long story.
내가 aviation 관련해서 논문을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A교수 랩에 들어가는 거였겠지만-
그래도 그 랩에 들어가지 않은 건 잘 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