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kin Donuts, 소회.
기억하다 2009. 10. 16. 06:30 |
대학원에 오기 전, 한국에서 한동안 영어강사로 일했었다.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 준비하고 출근하면 학원에 6시 10분쯤 도착했다.
강사실에서 거울 보면서 심호흡 해가며 6시 30분 강의를 준비하고,
아침반 세 클래스를 가르치고나면 열 시가 겨우 넘은 시각에 아침 shift가 끝났다.
저녁 shift는 오후 다섯 시 반에 시작했고- 런치타임 프리토킹을 가르치지 않는 달에는
중국어 학원과 gym에 가기 전까지 보통 두어 시간쯤 여유가 있었지.
당시 회화 강의를 같이 하던 캐네디안 청년 브라이언,
미국인 아저씨 마이클과 셋이 잘 어울려 다녔는데,
직장인들은 모두 출근하고 뭔가 묘하게 나른한 공기가 감도는
테헤란로를 가로질러 코엑스몰 맥도날드엘 간다든가,
혹은 섬유센터 1층에 있는 던킨도너츠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선
늦은 아침 커피를 '들이부으면서' 수다를 떨곤 했다.
늘 시덥잖은 수다였다. 학원 측의 어이없는 행정처리를 성토한다든가,
고마운 학생, 웃기는 학생, 어이없는 학생 에피소드들을 줄줄이 늘어놓는다든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웃기는 일들을 같이 얘기하면서 깔깔 웃는다든가.
마이클이 말했었다.
넌 여기 오래 있을 아이가 아닌 것 같다고. 이 바닥이랑 안 어울린다고.
그냥 피식 웃고 말았지만, 그렇게 말해주는 마이클이 내심 고마웠다.
그 당시 내가 본 대치동 영어강사들에겐 정체모를 무기력감-이 늘 느껴졌었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나른한 공기는, 강사 생활을 오래한 사람일 수록 더 짙었거든.
(대한민국 영어교육에 한 몸 바치겠다는 큰 뜻을 품었던 몇몇의 예외는 물론 있었음..^^)
영어 강사로 일하면서 돈이야 참 쉽게들 벌 수 있었지만,
발전도 미래도 없다는 생각이 젊은 우리를 피폐하게 만들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어디까지나 내 사견이지만. 새벽과 밤에 일해야했던 split shift를 빼면, 들인 노력에 비해 많은 돈을 받았다고 생각함)
아무튼, 적당한 sarcasm으로 똘똘 무장했던 우리의 대화는-
수도 없이 커피를 마셨던 삼성역 근처의 모든 패스트푸드점을 거쳐서,
밤 아홉 시 반에 퇴근해 기네스 파인트를 마시곤 했던 wabar를 지나,
금요일 밤에 꼭 가곤했던 포스코 빌딩 뒤의 치킨집으로 이어졌었지.
우리 동네에 (비록 주유소에 딸린 조그만 가게지만) 던킨도너츠가 생겼다는 이야길 들었다.
던킨에 도넛먹으러 다니진 않지만, 그래도 동글동글한 폰트에 핑크와 브라운의 조합을 볼 때면,
2007년 초, 대치동의 늦은 아침- 나른했던 아침 공기가 떠오른다.
그러고보니 브라이언, 마이클, 나- 셋 다 그 학원을 떠났구나.
나는 그렇게나 입술 깨물며 원했던대로 다시 학생이 되었고,
브라이언은 다른 학원으로 옮겼고, 마이클은 대기업 쪽 강의만 나간다고 들었다.
가끔 Facebook에서 서로 안부를 묻는다.
정말 내가 원하는 자리에 서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살기보단 버티어야했던 강사 생활이었지만,
내 꿈을 응원해줬던 그들이 있어서, 오히려 내가 많은 걸 배웠던 학생들이 있어서 즐거웠다.
심하게 바빴던 한 주를 보내놓고, 대학원 생활-에 대해서 불평을 늘어놓다가.
정말 울고싶도록 학교로 돌아오고 싶었던 그 때 생각이 나서, 끄적끄적. :)
배우고 있어서, 거북이만큼이나 느리지만 그래도 발전하고 있어서, 다행이야.
Posted by CoolEngine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