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11.14 Reading
  2. 2009.10.13 기형도-10월 2

Reading

공부하다 2010. 11. 14. 15:57 |


지난 목요일. 햇살이 눈부시게 맑고 날은 따뜻했다.
교수님은 DC로 출장가셔서 미팅은 캔슬됐고,
읽고 공부해야 할 것들은 가방에 한가득 들어있었다.
창문 따위 없는 오피스엔 돌아가고 싶지가 않았고,
중간고사 준비하는 언더 아가들로 가득한 도서관도 갈 마음이 나질 않아
드릴필드에 머플러를 깔고는 가방을 베고 누워 책을 잡았다.
사방에서 나타나 기어오르는 거미들 때문에 그리 오래 있진 못했지만-
유닛 하나를 다 읽었고 분석 툴 여섯 개를 배웠다.

교수님이 지난 달에 주신 Discourse analysis 책 두 권 중에서
개론은 워낙 쉽고 재밌게 쓰여있어 사흘만엔가 읽어치웠었는데-
두 번째 책인 tookit은 학회며 워크샵이며 이래저래 다른 일에 밀려있다가
이제서야 다시 시작한 참이다.

책을 읽고 새로운 데이터 분석 방법을 배우는 건 재밌다.
코스웍 들을 때처럼 공책 정리도 하고.
내가 전공하는 분야가 아닌 언어학에서 나오는 것들이라
꽤나 생소하지만, 이걸 배워서 퀄리테이티브 데이터 분석에 써먹어야지
내가 스스로 보기에 흡족한 수준까지 상세한 분석을 할 수 있겠다 싶어서
교수님 졸라 시작한 것.

이번 주말에는 끝을 낼테다.
내일은 오랜만에 도서관엘 가야지.
햇살 가득 비치는 2층 큰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야겠다.

Posted by CoolEngineer
:

기형도-10월

기록하다/북로그 2009. 10. 13. 02:28 |
1 
흩어진 그림자들, 모두 
한곳으로 모이는 
그 어두운 정오의 숲속으로 
이따금 나는 한 개 짧은 그림자가 되어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쉽게 조용해지는 나의 빈 손바닥 위에 가을은 
둥글고 단단한 공기를 쥐어줄 뿐 
그리고 나는 잠깐 동안 그것을 만져볼 뿐이다 
나무들은 언제나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작은 이파리들을 떨구지만 
나의 희망은 이미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너무 어두워지면 모든 추억들은 
갑자기 거칠어진다 
내 뒤에 있는 캄캄하고 필연적인 힘들에 쫓기며 
나는 내 침묵의 심지를 조금 낮춘다 
공중의 나뭇잎 수효만큼 검은 
옷을 입은 햇빛들 속에서 나는 
곰곰이 내 어두움을 생각한다, 어디선가 길다란 연기들이 날아와 
희미한 언덕을 만든다, 빠짐없이 되살아나는 
내 젊은 날의 저녁들 때문이다 

한때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 
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 
이미 대지의 맛에 익숙해진 나뭇잎들은 
내 초라한 위기의 발목 근처로 어지럽게 떨어진다 
오오, 그리운 생각들이란 얼마나 죽음의 편에 서 있는가 
그러나 내 사랑하는 시월의 숲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 


2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의 촛불은 이미 없어지고 
하얗고 딱딱한 옷을 입은 빈 병만 우두커니 나를 쳐다본다


출처: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 지성사


Posted by CoolEngine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