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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16 여름날

여름날

살아가다 2010. 6. 16. 03:15 |

1.
오늘도 어김없이 날이 덥고 끈끈하다.
요즘 좀 이상한 게, 아무리 늦게 자도 아침 일곱 시 반이면 눈이 떠진다.
알람이 몇 시에 맞추어져 있든 상관없이, 새가 울고, 빛이 반짝이고, 눈을 뜨면- 일곱 시 삼십 분.

2.
지난 2주 동안 가족들과 여행을 갔던 조엘군이 어제 돌아왔다.
선물로 Ghirardelli 에서 다크초콜렛을 입힌 에스프레소 빈 한 통,
그리고 Viansa에서 메를로 들어간 초콜릿 한 통.
작년 1월에 혼자 샌프란시스코에 여행갔을 때 갔던 나파밸리-
Viansa라는 와이너리에서 카베르네 소비뇽이 들어간 다크초콜렛 스프레드를 한 통 사왔었는데
거의 다 먹어가던 참이라 안타까웠거든. 나파에 간다길래, 그럼 Viansa 찾아가서 초콜렛 사오라고 농담했는데
진짜 그 와이너리를 찾아가서 사다준 것. 그 마음씀이 고마웠다.

3.
옛날 사진들을 뒤적거리다가, 서울에 두고 온 천체망원경을 찍어둔 게 나왔다.
고등학교를 그만둔 직후, 아버지께서 축하한다며 선물로 사주셨던 반사식 망원경.
수동이라 별을 추적할 수도 없고, 그래도 열심히 손으로 돌려가면서 별도 달도 많이 봤었는데.

'축하한다.'라고, 말씀하셨던 아버지.
한국을 떠날 때도, 아빠의 마지막 한 마디는 그랬다.
어깨를 툭툭 쳐주시면서, 축하한다-고.
내 삶의 중요한 터닝포인트엔, 아빠의 축하가 있었구나, 그런 생각을 잠시.
두 번 모두 무모해 보였을 선택이었는데도.

같은 옛날 사진 폴더에서, 내가 네 살 때, 외국 출장가신 아버지한테
나랑 언니랑 엄마랑 같이 썼던 크리스마스 카드를 찍어둔 사진도...


비뚤비뚤, 현아는 아빠가 좋아-라고 '그려'놓았다.
그냥, 이런 사진을 보면 그 때 지금의 나와 같은 나이였던 엄마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싶고.
두 딸을 다 키워놓은 지금의 우리 엄마아버지는 또 어떤 마음이실까, 싶고.
어제 오랜만에 걸려온 어머니의 전화를, IRB 프로토콜 쓰느라 바쁘다고 일찍 끊은 게 맘에 걸리고, 그렇다.

그냥, 약간의 여유에, 또 마음은 멀리멀리 detour, 그런 유월 중순의 여름날.
Posted by CoolEngin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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